정신과 장기환자가 작가님을 알게 되고 약을 끊게 된 이야기.
어디부터 적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쓸데없는 잡설이 길 것 같습니다.
저는 하고 싶은 게 없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는 건 좋아했지만 공부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대학교는 재미 없는 시간낭비 같았고, 그냥 돈이나 벌자는 마음으로 요식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뭘 해도 길게, 끈기 있게 지속하지 못하는 천성 때문에 한 직장에서 오래 머물지도 못했고 배울 거 다 배웠다 싶으면 빨리 나가자는 마음으로 빨리 배우고, 빨리 나가는 걸 추구했습니다. 처음부터 요리전문가가 될 마음도 없었고, 그냥 각 업장들의 전략이나 영업노하우 등에만 관심이 많았었습니다.
그러다 이런저런 계기로 20대 중반의 비교적 어린 나이에 작게 사업들을 시작하게 됐고, 운이 좋아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아 소위 깜냥도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제법 잘 풀리게 되었습니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준비도 없이 시작했는데도 납품하는 거래처들이 생기고, 매장들도 대박이 나고, 친척들과 지인들부터 모르는 사람들까지 가맹문의가 쇄도하고. 그리고 그게 모든 문제의 시작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거짓말이 늘어갔습니다. 대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사회생활도 해 본 적 없었으며 계약서 한 장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꼬맹이가 욕심만 많아서 어른들 머리 꼭대기에 서고 싶었으니 스스로 자기세뇌와 거짓말이 없이 이어나갈 수 없었겠지요.
잠은 줄여야 했고, 일은 쉴 수가 없었고, 제품개발할 때는 밤을 새워가며 사무실에서 쪽잠만 자기도 하고, 점점 몸도 마음도 피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전화벨이 너무 많이 울려서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자동차 경적소리가 바로 앞에서 울린 것처럼 화가 치밀어오르고. 그러다 이런저런 계기로 사업을 반쯤 접게 될 쯤부터, 공황장애가 생겼습니다. 업무공간에 들어가면 숨을 못 쉬겠더랍니다. 정신과에 갔더니 공황장애라 하고, 우울증도 없는데 항우울제와 안정제를 처방 받았습니다.
그때부터는 시간이 많아져 좋아하던 운동들에 집착하게 됐습니다. 커피는 하루에 기본 4잔 이상씩 마시고, 자기 전 소주 서너 병씩 들이붓고 자는 건 이미 일상이었습니다. 정신과에서 알콜의존치료제와 수면제를 추가로 처방 받기 시작했고, 그때부터는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였던 터라 술을 먹어도 필름이 끊기거나 주사를 부리거나 하는 일이 없었던 제가 수면제를 먹기 시작하면서 주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수면제와 술을 같이 먹었거든요. 심지어 술을 먹지 않아도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곤 했습니다.영화 <잠>이나 탐사보도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졸피뎀 부작용에 대해 다룬 영상이 유투브에 있는데, 나온 증상 거의 대부분을 저 역시 겪었습니다. 빙의지요. 자고 일어나면 무언가를 먹은 흔적들이 있고, 지인들에게 전화해 맥락 없이 화를 내고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기억이 없구요. 그런 심각한 상황에도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지인들은 그냥 제가 술 마시고 그런 거라 생각해 너그럽게 넘어갔고, 저는 그냥 잠버릇이 이상해졌나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몸이 무너졌습니다. 팔에 힘이 빠지는 일이 가끔씩 있었는데 어깨 MRI를 찍으면 정상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갑작스러운 방사통과 함께 팔에 힘이 거의 안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MRI를 찍어보니 척수병증이라더군요. 목에 있는 모든 디스크가 척수를 누르고 있다고. 이렇게까지 방치됐을 수가 없는데 교통사고 환자 MRI 같다며 여태 어떻게 몰랐냐고. 아마 목근육들이 버텨줘서 통증이 없었던 것 같은데 팔을 못 쓸 수도 있단 생각이 드니 덜컥 겁이 나서 급하게 수술을 결정하게 됐습니다. 철심을 박아야 한다고 했는데 운동해야 되서 목 움직임이 제한되는 수술은 안 된다고 목뼈 일부를 잘라 공간을 확보하는 수술을 결정한 개노답인간이 바로 접니다. 엘리트체육인들과 함께 격한 운동들과 과음, 고개를 숙이고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요식업 특성상 그냥 터질 일이 터졌을 뿐인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던 거죠. 당연히 수술 후에는 과격한 운동은 물론 요식업 일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수술 후유증이 너무 심했거든요. 그렇게 돈에 이어 몸까지 잃게 되었습니다.
수술이 21년이었고, 2020년부터 저는 음모론에 빠져 있었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방역지침들 때문에 의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스프링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누르면 누를수록 더 튀어오르는, 위에서 누르는 사람은 올려쳐야 직성이 풀리는 망나니였습니다. 마침 집이 가까워 가깝게 지내는 사촌형이 의사였고, 더 가깝게 지내고 맛있는 것도 만들어주며 이것저것 궁금증을 해소하다 보니 코로나 사태가 사기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음모론계에서도 코로나가 사기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음모론들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백신이 나올 거라는 언론보도가 돌 때부터 SNS에서 의견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백신반대집회를 기획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민망할 정도로 소수였고, 조금씩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니 온갖 곳에서 다른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갈라치고 더 큰 조직을 만들어 사람들 빼가고 하는 일이 반복되더군요. 그때 알았습니다. 어차피 크기 전에 짓밟힐 수밖에 없구나. 답답함에 냉소적인 성향은 더 강해지고, 혀에 독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돈을 벌 기회도, 건강한 몸도 없으니 드디어 혀로 교만을 부리기 시작했지요. 음모론에 더 심취해 온갖 음모론, 국제정세, 종교 관련 도서들을 탐닉하고, 예수쟁이들을 조롱하고 살았습니다.
헌데 음모론을 파면 팔수록 성경이 옳다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아무리 봐도 소위 프리메이슨이라 불리는 지배층들이 하는 일은 진실을 가리는 일밖엔 없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세속교회를 나가자니 이미 두 개의 바빌론을 포함해 종교서적들을 탐닉하면서 세속교회들이 가짜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세속 교회를 나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믿음은 없는데 성경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상태로 모순을 키워나갔습니다. 도무지 성경에는 손이 가질 않았거든요. 그러다 제 정신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키워온 죄들, 그걸 덮느라 쌓은 모순들 때문에 더 이상 정신과약이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미 항우울제, 항조울제들은 안 써 본 게 없었기에 막막해졌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마취시켜놓고 무시해 왔던 양심의 목소리가 한 번에 밀려왔던 것이죠.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무너져가던 어느 때에, 조만간 제 의지가 아닌 의지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님께서 디코딩하신 악귀의 대사처럼 자살에는 보이지 않는 손(guest)이 있다는 말을 저는 정확히 느꼈습니다.
그 시기에 저는 이미 작가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읽는 약>에 수록된 에세이들을 집필하시던 시기였고, 읽으면 그냥 좋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유하고 공유할 때마다 또 읽고 자연히 수십 번씩 읽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러면서 제 양심을 가리고 있던 모순들을 더 이상 무시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SNS에 정신과 약을 끊겠다는 일종의 계획안을 올렸습니다. 테이퍼링 방식으로 끊겠다는 내용이었는데 거기에 작가님께서 댓글을 적어주셨습니다. '그렇게 끊으면 죽어도 못 끊으니 한 번에 끊으셈. 그리고 성경 꼭 읽으셔야 함. 예수 모르고 끊으면 무조건 병신됨.' 정도의 내용으로 말씀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말투는 제 기억에 의한 왜곡이 있을 수 있는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전부 맞는 말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제 주변에도 정신과약을 끊은 친구들이 있었는데, 전부 중독이 다른 곳으로 옮겨갈 뿐 나아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대부분 술이나 여성편력으로 옮겨가더군요. 전부 가슴에 새겨두었습니다.
그래도 도무지 신앙이 생기지 않던 어느 날, 제 고민을 알던 어느 분께서 자신이 다니는 교회로 초대하셨습니다. 백신반대집회를 하면서 알게 된 분들이었고, 목사도 그런 내용의 설교도 하는, 세속 교회가 파란약이라면 그 교회는 나름 빨간약 진영의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빨간약과 파란약 모두 쥐약임을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미 알고 있던 음모론 지식들에만 비추어 봐도 이 교회가 잘못됐다는 건 알겠더군요. 사단의 회당이라 느꼈고,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때 마음 속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당신께 너무나 가고 싶은데, 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다고. 빛을 비추어 달라고. 그럼 제가 가겠노라고.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도 않는 내용으로. 그때는 이미 주셨다는 걸 몰랐으니까요.
그렇게 몇 개월이 더 지나고, 22년 7월에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성경을 주문하고 다니던 직장에 퇴사 통보를 하게 되었습니다. 몇 달은 칩거하면서 성경을 읽을 계획으로요. 그때 마침 조부께서 돌아가셨고, 예정보다 이틀 더 일찍 퇴사해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제 친가는 기독교 집안이었고, 장례는 기독교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목사들이 진행하는데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구역질이 나왔습니다. 그냥 혼자 성경을 읽어야겠단 생각이 더 강해졌습니다. 마침 코로나 사태 때 도움을 받은 사촌형을 오랜만에 만났고 약을 끊고 성경 읽겠단 제 계획을 말하니 반대하더군요. 테이퍼링 방식으로 끊는 게 안전하다느니, 정신과약 위험한 거 아니니 그냥 먹어도 된다느니... 그러면서 자기도 정신과약을 먹기 시작했다고 고백하며 제 앞에서 항우울제를 꺼내 먹더군요. 나이 먹고 전과해 30대에 다시 전공의 생활을 하며 교수 압박에 못 이겨 안 맞을 거라고 공언하던 사람이 백신을 맞더니 이전과 180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친척들에게도 백신은 3차까지 맞아야 한다며 어용의사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읊는 모습을 보며 저와 함께 코로나 사태에 분개하던 젊은 의사는 백신 맞고 죽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모순의 크기가 너무 크니 양심의 목소리를 잠재우려면 정신과약이 필요했겠죠. 반면교사들 덕분에 제 의지는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집에 돌아와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읽기도 싫고, 어느 부분부터 읽어야 할지도 몰라 그냥 나오는 곳 읽으려고 펼쳤는데 요한복음이었습니다. 요한복음을 1장부터 소리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읽다가 어느 순간부터 눈물이 나고 있었고, 나중엔 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죽였구나.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구나. 아무 죄가 없는 선함 그 자체이신 분께서 내 죄 때문에 죽으셔야 했구나. 왜 나처럼 악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 선한 분께서. 하루종일 펑펑 울면서 죄송하다고 잘못했다고 외쳤던 것 같습니다. 살면서 가장 많이 울었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냥 알았습니다. 내 안에 무언가의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확신처럼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약간의 반향은 남아 있었지만 며칠 정도 미미한 부작용 정도만 겪고 약을 완전히 끊게 되었습니다. 만으로 7년을 넘게 먹었는데 단 하루만에요.
지금 돌이켜 보면, 성령 침례를 받으면서 곰팡이들이 힘을 못 쓰게 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한 3주 정도 완전한 평화와 자유, 온전함 속에서 살 수 있었거든요. 물론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생각 등 죄가 거듭되면서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작가님 덕분에 알게 된 리얼소금으로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해져 감사한 마음으로 매일 뉘우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가끔 자아가 올라올 때마다 그날을 떠올리며 요한복음을 읽고 있습니다.
돈, 몸, 정신까지 다 무너지고 나서야 비로소 뉘우칠 생각이 들었던 가장 악한 사람에게 그렇게 많은 은혜를 주시고 작가님과 만나 많은 것들을 받게 해주신 예수님께, 또 이끌어주고 제가 도저히 알 수 없었을 것들을 가르쳐 주시는 작가님께 항상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더 많이 배우고, 나누고, 희생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매일 자기부인하겠습니다. 지나치게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