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올려 드리며.
반신욕하면서 끄적인 결혼에 대한 단상... 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넋두리가 더 길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전 애인(관계는 안 했으니?)과 당연히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다. 사회적으로 둘 다 결혼해야 할 나이였으니까? 누가 봐도 인정할 미인이었음에도 오히려 대시하는 남자들로 인해 어릴 때부터 남자들을 무서워했던 탓에, 나는 그 아이의 첫 남자였다. 그녀는 자신과 반대로 동양적인 얼굴에 근육질의 큰 덩치(지금 만큼 살이 찌기 전), 지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는 듯 호기심을 자극하는 언사와 좋으면서 티나게 철벽을 치는 내가 귀여웠다고 했다. 그래서 나만은 무섭지 않았다고. 173의 훤칠한 키와 여자들이 부러워할 타고난 몸매, 나와 달리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너무나 미인이었던 그녀는 여미새 얼빠였던 과거 나의 이상형이었고, 나는 그녀에게 무섭지 않은 유일한 남자였다. 항상 같은 말을 동시에 꺼내는 일이 많아 우린 영혼이 가깝다고 말하곤 했었다. 그렇게 우리는 행복했었다.
그러다 내 세상이 바뀌었다. 눈에 보이고 발을 딛고 있는 세상이 아닌 보이지 않는 하늘의 왕국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는 성경을 읽지만 세속교회에 소속되지 않은, 속칭 바이블빌리버였다. 처음 구원 받게 된 그때, 그녀는 세상에서 제일 기쁜 사람 같아 보였다. 매일 성경 얘기를 나누고, 함께 예수님께 감사하고 두려워할 수 있었던 나날이 지속됐다. 나를 통해 뉘우치겠단 형제들이 생겼을 때도,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렇게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씩 삐걱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진심으로 뉘우치길 바랐다. 자기연민을 멈추고 함께 뉘우치며 예수님을 기다릴 수 있길 바랐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한이 많았다. 이민 1.5세로 8살부터 미국에서 살았던 그녀는 재혼가정에서 새어머니와 이복동생, 미국에서 집안 사업이 망하며 알콜 문제를 가진 아버지 밑에서 차별을 견디며 책임감까지 강요 받아야 했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집안의 대소사를 도맡아야 하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을 돌봐야 했고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명문대 입학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정작 여동생은 미국에서 가장 학비로 악명 높은 학교에 들어갔고, 스포츠카를 선물로 받았음에도 그녀는 질투나 원망은 하지 않았다. 나와의 미래를 제쳐두고 대장암 판정을 받은 새어머니의 병간호를 하기 위해서, 헤어지기 싫어 울면서 발을 떼지 못하다 미국으로 떠나던 그날도 그녀는 누구도 원망하지는 않았다.
나는 내 아이를 갖고 싶었다. 나를 닮고, 나를 두려워하고, 나를 사랑하는 내 아이를 보며 예수님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자기 인생이 절실했다. 한 번도 그녀 자신을 위해서 살아본 적 없었기에. 가족들을 위해 장녀인 자신이 항상 희생하는 걸 당연히 여기는 삶을 살았기에. 그녀는 나와 결혼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 결혼하고 애까지 낳으면, 평생 한 순간도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할 것 같다고. 너는 살아봤지 않느냐고. 할 말이 없었다.
가족들을 위해 스스로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도 원망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곧은 성품, 현실감각, 똑똑한 머리. 나는 그런 그녀를 좋아했다. 그 모든 게 날 위해서만 쓰일 거라고 생각한 양심 없는 놈이었어서. 그 사실이 끔찍했다. 그녀가 나를 위해서도 희생하기만 바랐구나. 내 소유물이라도 되는 줄 알았구나. 그래서 잡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 난 희망이고 탈출구였을 텐데.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겠구나. 옳은 말을 해 줄 수는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폭력이 될 거라 느꼈다. 아무리 옳은 말도, 상황이 적절하지 않을 때 한다면 그게 양심적인가. 그녀의 생각이 바뀌기만 기다리다 1년이 넘게 지났고, 이제 내 손을 떠난 것 같다.
모임에 더 자주 나가게 되면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많은 커플, 부부들을 보면서 동병상련의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새로 시작하는 부부들을 보면 걱정도 되고. 당연히 질투는 아니다. 이혼만 해 왔던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들인데. 다만 내가 구원 받은 이후에도 양심이 어두워 더욱 그랬을 테지만, 사람에게는 내 배우자나 혈육조차도 구원 받게 할 능력이 없다는 걸 더 여실히 깨닫게 됐다. 여태까지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해서 옳은 방향으로 나아간 건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앞으로도 그분께서 주시는 것 아니면 받지 않아야겠구나. 그렇게 결혼을 올려 드리게 됐다. 예수님의 자녀들에게 감히 음욕을 품거나 자기 소유물이 되기라도 할 것처럼 생각한 나 자신에 절망하면서.
사실 현실적으로도 그렇지 않은가. 매거진을 읽다 보니 진짜 현실을 너무나도 잘 알 수밖에 없게 됐는데. 결혼을 할래도 "너 나랑 표 나오기 전까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만큼만 받으며 그럭저럭 살다 표 등장하면 가족들 다 같이 굶어 죽거나 목베임 당할래?"라고 말하지 않으면 거짓말인데. 의례적으로들 하는 평생 책임지겠다느니, 행복하게 해주겠다느니 하는 말은 빈말로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니 영원을 함께할 사람이 아니면 또 내 죄만 늘어나고 모순만 커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에서 작가님 부부에 대한 얘기가 나온 적 있다. 형수님이 작가님 대하기 어렵고 힘들지 않을까 하는 그런 이야기. "너무 좋을 것 같은데요. 부부는 우리와 예수님 관계의 모형이잖아요. 나보다 훨씬 더 올려 드린 분이 남편이고, 남편에게 순종하면 예수님께 순종하게 되는데 너무 편하지 않을까요?" 정도로 대답했던 것 같다. 당연히 농담조로 나왔던 얘기였고, 순간 드는 생각들을 나에게 들려주는 것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고 나니, 작가님이 부러웠다. 이 역시 질투는 아니다. 작가님 만큼 올려 드릴 생각조차 해 본 적 없으면서 같은 걸 받길 바랄 정도로 양심이 어둡지는 않다.
다만 그냥 그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내 마음이 더 확고해졌던 것 같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 아니면 받지 않으리라. 무엇도 내가 하려고, 내가 이루려고 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결혼을 올려 드렸고 그러고 나니 더 큰 평화가 찾아왔다. 이제 길에서 미인을 봐도 시선이 머물지 않고(가긴 감), 막연하게 좋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지 않고, 온갖 방향에서 오는 욕구에 더 이상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자기연민에 빠져 있던 건 나였던 것 같다. 아니, 맞다. 그렇게 많이 받았음에도 양심이 어두워 그녀와의 미래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내가 갖고 싶은 것만 좇으며 살았었다. 남의 마음은 헤아리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나는 혼자 살기로 했다. 예수님과 함께 걸으며. 주시지 않는 건 그게 나에게 더 이롭기 때문이다. 주시는 모든 시련과 고통 역시 나에게 필요하기 때문이고. 그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 수 있게 됐다. 이 모든 것들을 생명까지 올려 드리며 가르쳐 주신 작가님과 작가님께 지식을 허락하시고 저를 만나게 해주신 예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솔직한 게 제일 멋있죠. 형제님이 저보다 훨씬 멋진 분이십니다. 저보다 훨씬 양심적이시고 ㅎㅎ 덕분에 항상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